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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by Sam Giller

빨래

이 글은 브런치로 이전 발행 되었습니다.https://brunch.co.kr/@samgiller/16

지은 글 2026. 4. 9. 11:33

가방

'가방 속이 복잡한 사람은 삶도 그렇게 된다'라는 말을 예전에 엄마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항상 많은 물건으로 가득한 내 가방 속을 정리해야할 필요를 느꼈지만 내용물을 가볍게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까맣게 20년 정도 잊고 살았는데 며칠 전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봤다.예전에는 그저 미신처럼 들렸던 것이 지금은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라 이해된다. 가방속에 이것저것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싸들고 다니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 꼼꼼한 면모가 피곤함을 낳는 것. What's in my bag 이라고 적힌 자막과 함께 연예인들이 가방 속의 물건을 꺼내 보여주는 tv쇼를 본 기억이 난다. 대부분 광고겠지하는 생각에 채널을 돌렸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스크롤링 중 엠마 왓..

지은 글 2026. 4. 8. 13:04

수향미

최근에 방문한 식당에서 아주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했다. 손 닿는 곳 하나의 흐트러짐도 허용치않는 완벽주의 추구 성격을 가진 가게 주인. 아주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나같은 손님으로서는 모든 것이 정렬되어 있고, 깨끗하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쓴 꼼꼼함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아주 작은것까지 계산된 섬세함. 갓 일곱살이 된 둘째와 다 먹지도 못할 걸 알면서 메뉴 두 개를 주문하고(이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매우 바람직한 손님이라고 믿었다) 기다리는데 ‘아이 밥은 무료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아이가 읽고 나에게 알려줬다. 아이가 국수를 먹다가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다해서 밥솥에 밥을 가지러 갔는데 갓지어서 윤기가 흐르는 밥이 아닌가. 게다가 구수한 향이 일품인 품종의 쌀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감동의 연속이..

지은 글 2026. 4. 8. 06:45

딸기

딸기를 씻고 다듬을 때는 다른 어느 과일을 다룰 때보다 섬세한 집중력을 쏟는다. 유리 공예품을 조심스레 목욕시키듯 정성을 다한다. 문득 어린 시절 엄마가 설탕에 찍어주던 딸기를 떠올린다. 엄마도 나처럼 그렇게 공들여 씻었을 테지. 그때 내가 남긴 딸기 꼭지의 하얀 부분은 아마 엄마의 몫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못생긴 것만 골라 먹고 예쁘고 맛있는 건 두 아이의 접시에 담는다. 딸기는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유독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첫째를 임신 중일 때 먹었던, 한 겨울의 딸기만큼 맛있는 딸기를 다시 만날수 있을까. 우연히 동네 과일가게에서 만난 장희 품종은 기다란 세모 모양에 사르르 녹는듯한 식감이 매력적이었다. 재배가 까다롭고 과육이 부드러운 탓에 유통이 어려워 만나기 쉽지않..

지은 글 2026. 4. 8. 06:36

탐정J

J와 나는 중학교 다니는 동안 같은 통학버스를 탔고, 비슷한 수준의 성적에 경쟁의식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아이는 나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나보다 한뼘은 더 큰 키, 미국에서 꽤나 지내다 온 것 같은 영어 감각, 기품있어 보이는 어머니, 무역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둔, 혼자 딴세상에 사는 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봄소풍 날 입었던 옷이 기억난다. 회색 바탕에 차분한 하늘색이 섞인 후드티 안에 미색과 살구색의 중간쯤인 반팔 폴로를 받쳐 입고 진한색의 플레어핏 청바지, 검정색 나이키 허모사를 신었다.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저 친구의 반응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날 관찰할 만한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했나보다. 내가 사는 ..

지은 글 2026. 4. 8. 06:26

동네 의원

우리 동네는 인구가 꽤 많다. 가장 번화한 상가 거리에 의원들이 많이 있는 큰 건물이 있는데 나도 어떤 날엔 그 건물 안 층계를 오르 내리며 여러 곳에서 진료를 받기도 한다. 많은 인구처럼 환자들도 늘 많아 그야말로 문전성시인데 내가 다니는 치과와 내과 역시 그렇다.난 줄서서 기다리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핫하다는 음식점의 웨이팅 17팀, 놀이기구 탑승 입구에 표시된 여기서부터 60분을 보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끔찍한 생각을 떨쳐 내곤 한다. 이토록 기다림을 못견뎌하는 내가 90분 후에나 돌아올 내 순서를 참아내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내과가 있다. 그곳에는 어르신들과 40대 이상의 환자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어르신들은 오랜 단골처럼 보이는 분들이 꽤나 많은데 접수대 직원분의 응대 매너를..

지은 글 2026. 4. 8. 06:15

검은 양

어느 날 아침에 양(sheep)에 대해 아이의 베갯머리에서 얘길 나눴다.아이를 깨울 시간이 됐는데 재밌는 동물 얘기를 해주면 짜증 없이 잘 일어날거란 생각이 들었다. 농장 울타리 앞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사람에게 몰려오는 양떼 얘길 듣고는 아이가 웃었다. 그러고는 엄마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라며 큭큭대고. 쓰러진 척 하는 농장주인에게 다가가 주인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모아놓은 영상도 엄마는 봤다고 얘기해줬다. 그리고는 양 탐정단이 주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영화가 곧 나올텐데 무척 기대된다고, 같이 보고 싶다고 대화를 나누며 아침을 시작했다. 어쩌면 인간은 다 탐정이 되길 꿈꾸는지도 모른다. 관찰하고 이해하고 정확히 예측할수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을테니. 저 사람..

지은 글 2026. 4. 8. 06:04

주차장

오전 9시 6분.둘째와 함께 집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한다.건물 밖으로 나오니 들리는 새의 지저귐이 반가워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곧 새 한마리가 다른 나무로 날아간다.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계단에 양생중인 시멘트는 언제 다 마를건지 궁금하며, 나무에 버섯이 더 자라서 두 겹이 되어 보이고, 차가운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아이의 재잘거림이 보통의 평온한 하루를 맞이하게 한다. 신호 대기 중에 구름이 떠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고 묻는 둘째에게 오늘 찬바람이 불어서 그런가보다하고 단순한 대답을 한뒤 신호가 바뀐걸 확인하고 기분좋게 출발한다. 다음에 지나갈 직진 신호가 곧 내 차례라는걸 알기 때문이다. 같은 경로를 비슷한 시간대에 왕복하는 루틴을 반복하..

지은 글 2026. 4. 8.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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